[책 요약] 화폐혁명_앳워크_Part2. 1차 화폐혁명

<화폐혁명_Part2. 1차 화폐혁명>


원시 화폐(화폐 = 신뢰)

농경시대 - 가축이나 곡식 물물교환 / 화폐 (금속 - 금, 은, 청동)
구석기 시대 - 희귀한 물건 소장용 - 교환 매체로 이동 (우리나라 - 흑요석(창 촉, 화살촉)) , 주로 조개껍데기 이용
신석기 시대 - 농경/목축 - 소는 부의 상징 및 교환 수단 / 곡식 화폐

최초의 주조화폐 - 동양

기원전 10세기경 - 도전(칼 모양), 포전(쟁기 모양) 사용?→ 화폐제조 거푸집이나 공방이 연나라 지역 발굴?→ 명이 새겨진 명도전?→ 연나라 추정 이유 / 도전/포전은 고조선(주요 수출품 - 가죽)에서도 발견
기원전 7세기경 - 제나라(관자) - 고조선의 문피(호랑이, 표범) 3대 특산물

금속화폐

중국

춘추전국시대 - 화폐 본격 시작→ 화폐 방생이 중요한 통치 수단
기원전 7세기 - 제나라(관자) - 인플레이션, 디플레이션의 개념이 기록되어 있음.
진시황 - 중국통일의 힘→ 기계식 활, 소금 전매권, 문자통일, 화폐 통일, 소금/철 전매 국고(재정)

기원전 366년 - 진나라 통일전 - 반량전 사용→ 통일
통일전 중국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주화를 사용함.
기원전 2세기 - 한나라→ 진나라의 반량전을 민간 주조를 허용?→ 결과 : 화폐 발생량 증가, 인플레이션 발생
기원전 186년 - 흉노와의 전쟁으로 화폐 수요 증가→ 민간주조 금지
기원전 175년 - 반량전(무게 1/2 - 사수전 발행) - 품질 유지 조건으로 민간 주조 허용
기원전 144년 - 다시 금지
심각한 재정난으로 화폐 개혁 진행(한무제) - 반량전을 폐지 - 은+주석(백금화폐)→ 은화 / 은본위제 - 중국 화폐의 근간??/ 사마천<사기> - 가죽 화폐(흰 사슴 가죽)?→ 일부 학자는 지폐의 기원으로 주장

고대 한국

한서(지리지) - 고조선 돈을 사용한 기록
삼국지(동이전) - 고구려도 사용한 기록
둘 다 형태에 대한 기록은 없음

서양

서구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 - 터키지역(리디아)
금+은이 천연으로 혼합된 호박금 - 일렉트럼 코인 (코인 1개 = 소 5마리)→ 국가의 가치 조작으로 - 화폐가치 상실
기원전 550년 - 금과 은의 분리 기술 발명 - 최초의 금화/은화를 만듦 (크로이소스 왕)
기원전 6세기 - 페르시아 리디아 정복 - 화폐는 유지 (금화 - 세겔 / 은화 - 드라크마)


세계최초의 지폐

동양

 종이의 발명
9세기 - 종이어음 발생 기관 - 편전무 <동방견문록> 마르코폴로?
당나라 - 비전 / 송나라 - 교자
10세기 - 남송 - 철전을 사용 (무겁고 불편)?→ 대형점포연합이 철전 등가인 교자 발생 (철본위제)→ 세계최초의 지폐
13세기 - 원나라(중국 몽골 정복) - 중상주의(국가가 경제 간섭)
1260년 - 비단과 은을 기반으로 한 "냥" 단위 교초 발생 -몽골의 영향권 모든 지역에 통용→ 이슬람권+몽골→ 은을 근간으로 한 화폐경제 체제 통합 (위조자는 사형이라는 문구)
원나라는 지폐 유통을 위해 모든 금, 은 동전을 몰수?→ 무거운 세금 징수 및 지폐 발생을 남발→ 초인플레이션 발생→ 물물교환 시대로 회귀

서양

<화폐 경제학> - 노벨경제학상 밀턴 프리드먼(1974년) - 화폐의 본질은 시장 참여자들의 "신뢰"에 달려있다.
1585년 - 영국 신대륙 이민?→ 인디언과 공생 / 카리브해 연안 담배경작
1612년 - 존롤프 - 담배 신품종을 개발 - 버지니아에서 자립경제 기틀을 마련→ 담배 화폐 유통→ 영국의 금반출이 금지
1642년- 담배 법정통화 지정 → 담배 재배지 상승 (가치하락) → 170년 가까이 사용

신대륙에서는 물품을 화폐로 사용→ 식민지는 화폐 주조를 금지(영국)→ 영국에서의 화폐 유입도 적고 유입된 화폐도 수입된 대금으로 지출
화폐는 담배→ 쌀 (사우스캐롤라이나), 옥수수에서 비버의 모피로 이동 (신대륙 서부 이전의 목적이 모피 사냥이었음)

모피

모피는 중세초인기 상품이었음
모피 사냥을 위해 러시아는 시베리아 동토를 개척
1581년 이반 4세 모피사냥 본격화→ 시베리아 개발
1626년 -네덜란드 서인도회사 - 맨해튼 남단 배터리 파크 ->뉴암스테르담 건설→ 각국 거래
허드슨강 유역에서 네덜란드 모직천과 인디언 화폐인 조가비 구술 교환→ 인디언의 모피 교환 - 인디언 화폐 조가비는 인디언의 의사소통 도구이자 기록 매체로 이용?→ 특정 패턴으로 꿰어야 의미가 있으며 왐품이라 불렀음
모피 사냥은 백인의 서부개척 중요이유 였음 (영화 : 레버넌트)
1653년 - 맨해튼 남단 - 영국군 침략을 막기 위해 새운 나무 목책을 세웠으며 해당 목책 뒷거리 이름이 월가임. (Wall Street)


1580년- 파리 비버 모자 대유행 / 영국왕 찰스 1세→ 상류층은 비버 모피 모자를 쓰도록 포고령
1630년부터 북아메리카 비버 개체 수 감소
1661년 - 스웨덴 - 구리동전(크고 무거움) - 동본위제
1685년 - 캐나다의 프랑스 총독은 돈이 없어(프랑스 재정 문제 및 유럽 소동) 놀이용 트럼프를 법정화폐로 사용(식민지용 화폐) → 65년 동안 유통→ 프랑스는 승인하지 않음

미국 최초의 지폐

은행이 아닌 식민지 정부에서 발행한 정부권이었음

1690년 - 매사추세츠 식민지 정부는 프랑스 정부 식민지 정부인 퀘벡 침략→ 실패→ 나중에 지급한다는 약속어음(매사추세츠 파운드) 발행→ 서구 최초의 불환지폐 (현재 지폐 / 태환 지폐의 반대)
해당 지폐로 경기가 회복되었으나 다른 식민지 정부도 발행하여 인플레이션 발생→ 은본위제
1763년 - 프랑스와 인디언의 전쟁이 끝남→ 영국과 식민지 사이좋음→ 영국은 전쟁으로 빚이 많음→ 경기침체→ 본국 수입 물품 대금을 금과 은으로 유출→ 화폐 유통량이 하락→ 토지를 담보로 한 지폐를 발행→ 경기 회복→ 민간은행이 똑같이 발행→ 인플레이션→ 영국이 해당 지폐를 인정하지 않음(영국 투자자들이 못마땅해함→ 1751년 통화 조례의 배경)
1751년 - 영국이 법정화폐 금지 압력
1764년 - 금지 확대?→ 모든 지폐를 회수→ 세금을 금,은으로 납부→ 경제 불황→ 독립전쟁 (1775년~1780년)

기축통화

그리스

기원전 6세기 - 그리스 최초 기축통화 - > 아테네 드라크마 은화
기원전 594년 - 민전집정관 솔론 - 여러 가지 정책 시행→ 페르시아와의 교역을 위해 페르시아 은행 가치와 동등하게 드라크마 은화(무게 조정)→ 교역이 상승→ 지중해에서 가장 널리 유통
기원전 5세기 말 - 그리스 도시국가는 드라크마를 본떠 독자 화폐 사용→ 그리스 화폐 주조의 중심지
기원전 483년 - 대규모 은광이 발견
기원전 449년 - 아테네식 주화 및 도량형 사용 강제 통화법령을 반포→ 동전 뒤에 국가권력의 상징 도안을 집어넣음
기원전 5세기 - 펠로폰네소스 전쟁(아테네, 스파르타) 27년 지속→ 전쟁에 소비되는 비용을 통화량을 편법으로 증가(금화 + 구리)→ 초인플레이션 발생→ 시장경제 붕괴→ 로마 정복

로마

로마 제국의 경제는 오로지 농업이었으며, 농업을 위한 노예 경제가 국가의 경쟁력
부국강병 - 농업 + 전쟁
빈번한 전생으로 농민이 피해 상승, 귀족 부유→ 중상층 붕괴→ 농업기반 하락
알렉산더 사후 교역 하락→ 알렉산더가 발행한 경화(금화)는 그대로 유통이 되어 물가는 상승, 드라크마의 구매력은 하락→ 정복지의 세금을 금,은,귀금속으로 받음→ 화폐 발생
기원전 206년 스페인에서 금 1.8t, 은 60t 거둬들여 화폐제도를 정비

기원전 3세기 로마는 기축통화로 데나리우스 은화 사용→ 화폐는 신성한 것이라고 여겨 신전에서 주조(유노 신전 - 모네타 조폐소)
기원전 1세기 - 금화 아우레우스→ 프랑스+스페인 금광 채굴→ 화폐 유통량이 상승→ 인플레이션 요인

카이사르

기원전 59년 - 로마는 극심한 빈부 격차 - 토지 양극화 - 농지 개혁법을 통해 중상층 양성(국가의 토지 무상 분배)
경제개혁 - 고리대금업의 이자를 6%~12% / 일정 금액의 현금 보유 금지?→ 현금 유통
조세정책 - 세율 1/2
화폐제도 - 전쟁 준비로 금/은이 바닥→ 신전의 봉남물 공출→ 화폐 주조(뒷면에 카이사르 얼굴 이름 주조 - 선전매체로 이용)
화폐주조권을 국가로 귀속

네로

세수가 줄자 금은에 구리를 섞어 유통→ 화폐가치 하락→ 물가상승
은 부족의 원인은 은본위제를 하는 중국과의 교역 때문임

117년 - 트라야누스 - 은 함량을 더욱더 줄임(데나리우스)
3세기 말 - 초인플레이션 발생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데나리우스 은화를 폐지→ 새로운 은화 발행하였으나 실패
5년 뒤 - 콘스탄티누스는 화폐 개역으로 새 금화 솔리두스 주조→ 수도를 비잔틴으로 옮겨 동로마의 기축통화로 사용→ 서로마의 군대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땅이 줄기 시작하고 화폐 공급이 되지 않음→ 결국 476년 멸망

스페인

16세기 - 스페인은 (세계 최초 해가 지지 않는 제국 건설)
신대륙,

1503년~1660년 - 볼리비아/멕시코 은광 300t, 금 3만t 세비야 유입
16세기 - 스패인 부국→ 인플레이션→ 물가폭등→ 유럽 여러나라에 국제무역으로 은이 공급됨
스페인은 방만한 재정, 과도한 팽창으로 적자 상승→ 이단 종요 유대인 재산 몰수 추방(금융업)→ 스페인 금융업 붕괴

1492년 - 유대인 추방 직후부터 손실이 발생→ 외국에서 돈 대출→ 금은을 담보로 독일(제노바)로부터 대출→ 국가부채 상승
1550년 - 스페인 경제 상황은 심각→ 산업 몰락, 전쟁 비용으로 낭비
상태 개선을 위해 최악의 세금 징수→ 소비세 제도 (일부 상품에만 붙던 소비세의 과세 대상을 확대)
1555년 카를로스 5세 동생에게 신성로마제국을 양도→ 빚도 양도
1556년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왕 자리 양도→ 빚도 함께 물려받음
1557년 최초의 파산선언(현재의 국가 파산)→ 제국주의적 팽창정책(과도한 전쟁)으로 상태 더 악화
1560년 다시 파산 선언
1572년 네덜란드 독립전쟁 → 군비 지출이 재정수입의 두 배→ 스페인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이레리아 반도의 소금 생산지(네덜란드인) 봉쇄→ 스페인에 대출한 채권자들이 이자를 높임(40%)
1575년 세 번째 파산 선언
1576년 부채를 해결할 수단이 없어 채무자들에게 대한 지급중단 선언(스페인 공채 후로 - 채무를 장기융자로 전환)→ 채무불이행이 20년 주기로 5번 시행→ 독일 푸거가와 제노바 은행가들이 망해감(한때 메디치가보다 많았음)
1581년 - 네덜란드 북부 펠리페 2세 통치 거부
1588년 - 네덜란드 지원하는 잉글랜드 왕국 정벌을 위해 무적함대 파병→ 칼레해전에서 대패
1596년 - 4번째 파산 선언 - 페스트 유행
1599년-펠리페 3세는 화폐 주조에 사용되는 은화를 빼버림?→ 해당 은으로 빚을 갚으려 했으나 저질 주화만 유통되고 금화 은화는 해외로 유출되거나 자취를 감춤
1648년-네덜란드 독립
1640~1668년 포르투갈 독입
1659년 - 프랑스 남서부/북부 일부 빼앗김
1678년 - 동부를 프랑스에 빼앗김
1714년 - 시칠리아 나폴리,

댓글 없음

Powered by Blogger.